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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에 반했어요

by 매일베이지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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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이야기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먼저 읽었어요. 그 책은 도서관 서가에서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크림이 한 방울 섞인듯한 따뜻한 웜화이트의 표지에 빨간 글씨로 <작은 파티 드레스>라고 적혀 있었어요. 책이 어쩐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책을 빌렸어요.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이름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어요. 

 

그렇게 읽은 <작은 파티 드레스>가 너무 좋아서, 보뱅의 사진을 찾아보고, 또 한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나이 먹은 할아버지라니, 이런 할아버지가 이런 세련된 글을 쓰다니! 이미 그의 글에 반했고, 그의 나이에 놀랐습니다. 

 

보뱅의 책을 검색해서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을 모두 빌려 보았어요. 그랬더니 화성시에는 <환희의 인간> , <인간, 즐거움> 두 권을 더 구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아무 의심이 없었는데, <환희의 인간>을 몇 페이지 읽고, <인간, 즐거움>을 펼치는 순간 느낌이 오더라고요. 환희, 즐거움, 인간. 아? 뭐지? 이거 설마 같은 책인가? 하는 느낌이요. 출판사와 번역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책을 만나면 둘 다 읽으며 책 느낌을 비교해보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언제쯤 그렇게 해볼 수 있을까요? 목차의 번역과 프롤로그 부분을 읽고 <환희의 인간>을 결정했습니다. 

 

 

아무튼 어지간히 좋았어요. 이렇게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찾아 읽은 것은 정말정말 크리스티앙 보뱅이 좋았다는 말이거든요. 두 권을 연달아 읽어보니 저는 <작은 파티 드레스>가 좀 더 좋았어요. 어쩌면 그저 처음 읽은 보뱅의 글이라서 일 수도 있지만, 그 이유 말고 다른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결국 같은 작가의 에세이라 결이나 온도는 비슷해요.

 

2. 환희의 인간

 

<작은 파티 드레스>는 책과 글쓰기에 대한 글입니다. <환희의 인간>은 보뱅이 환희를 느낀 것들에 대한 글입니다. 음악, 책, 일상의 요소들에서 그가 찾은 환희를 적었어요. <작은 파티 드레스>가 더 좋은 이유는 책과 글쓰기가 더 마음이 가는 소재라서 일 수도 있겠네요. 특히 좋았던 글은 글 쓰는 여자들에 대한 글이에요. 그 글에 너무 꽂혀서 일 수도 있습니다. <환희의 인간>을 말하며 <작은 파티 드레스>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그에 대한 말이 길어졌네요.

 

<환희의 인간>의 글을 시작하는 한문장에 또 가슴을 부여잡았어요.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책이 좋고, 그럴수록 더 글을 쓰고 싶어요. 저는 하고 싶은 게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중 책 읽는 것 말고는 어느 것 하나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삶을 살고 싶어요. 

 

물론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을 써내려 갑니다. 나만 여는 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보고 함께 연다면 좋겠어요. 그러고 싶어요.

 

<환희의 인간> 역시 에세이에요. <작은 파티 드레스>에서는 에세이 제목에 따라 그 글의 내용을 간략히 메모를 해 두었어요. 그런데 <환희의 인간>은 그 작업을 하지 않고, 좋은 문장만 필사를 해두었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면 글의 내용이 떠오르긴 합니다. 하지만 어떤 글이 있나 그냥은 떠오르지가 않네요.

 

 

3. 문장수집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p84

 

"나에게 이상적인 삶이란 책이 있는 삶이며 이상적인 책은 어느 여름날 쥐라의 길에서 마주친 사자상 분수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던 차가운 물과도 같다."p93

- 보뱅이 군생활을 하던 뜨거운 날, 행군 중 쥐라의 길에서 마주친 사자상 분수의 머리에서 나오던 물을 떠마십니다. 그때 보뱅의 몸과 머리를 깨우며 온몸을 감싸던 짜릿한 환희를 말하며, 그에게 이상적인 책이란 그때의 물과 같은 책이라 합니다.

 

"오래된 책 보다 더 젊은것은 없다."p94

- 이 문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마신 술병보다 더 많은 수의 책을 읽었다. 책과 멀어진 삶이란 단 하루도 생각할 수가 없다." P113

- 저도 점점 이런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책이 좋고, 책을 보는 내가 좋아요.

 

"아름다움에는 부활의 힘이 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천국에 들어서지 못하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오직 그 이유 때문이다."p129

 

"시골집을 걷고, 책을 펼치고, 장미가 꽃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P169

 

보뱅의 환희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주변의 것 모든 것이 그에게 환희의 대상입니다. 보뱅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 역시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때로 살다 보면 그 생각에서 멀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내 마음의 중심이 거기에 있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잖아요. 저도 일상을 더 자주 멈춰 서서 들여다보고, 느끼고, 꺼내보고 싶어요. 

 

요즘 햇살도, 바람도, 공기도 좋은 날입니다. 하늘도 좋고, 이 계절에 피어나는 가을 들꽃도 예뻐요. 수 없이 멈춰서 사진을 찍어댑니다. 눈으로 보는 게 물론 제일 예쁘지만, 사진첩에 많은 사진을 저장합니다. 

 

 

다시 보지도 않으면서 왜 이렇게 사진을 찍어대나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답을 찾았어요.

"그 사진을 다시 보는 것보다, 사실 멈춰 서서 바라보는 이 순간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 건가 봐."

 

늘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그것이 요즘 저의 환희입니다.

 

 
환희의 인간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첫머리부터 이런 문장을 제시하는 사람의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 프랑스 저널 「렉스프레스」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아름다움을 숨죽여 기다리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선택한 단어들로일상의 한순간을 빚어내 선사하는, 프랑스가 사랑하는시인이자 에세이스트,크리스티앙보뱅의 에세이 『환희의 인간』이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환희의 인간』은 일상의 소소한 풍경 속 마주하는 기적과예술과예술가,책과 꽃,상징적인 인물,환상,그리워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서문을 포함한 열일곱개의 짧은 이야기들과그 이야기들 사이에 놓인,손으로 쓴 짧은 단락들로 구성되어 있다.각각의 이야기들 안에는 깊은 사유와 휴머니티가전작 『작은 파티 드레스』에서도 보여주었던 보뱅만의 맑고 투명한 문체안에 압축되어 있다.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일상을 달리보는 시인의 시선은 이 서로 다른 텍스트들을 하나로 묶는다. 결국 이 이야기들을 통해 보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작아서 말로 하면 훼손될 위험이 있는 어떤 것’이고, ‘결코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며 ‘순수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꽃을 피우는 순수함’인데,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서투름으로 붉어진 상처 입은 삶’이고,보뱅은 그것만큼 진실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
크리스티앙 보뱅
출판
1984BOOKS
출판일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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