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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의 법 에세이

by 매일베이지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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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1. 문유석작가의 책

문유석 작가를 문유석 판사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어쩐지 그게 좀 이상했다. 문유석 작가가 판사인 건 맞지만 내가 아는 문유석은 작가 문유석뿐이다. 그 사람의 책을 읽으며 즐거웠다. 판사이면서 몇 권의 책을 펴냈으니 본업은 역시 판사가 맞지만, 나는 그를 작가로 만났고, 작가로 만 알뿐이다. 그를 법관으로 만나 적이 없는 내가, 문유석을 판사라고 호칭할 때 TV 드라마에서 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 역시 그의 법조인이라는 감투가 빛나 보였나 보다. 그럼에도 뭔가 이상했다. 문유석 작가는 한 번도 그를 판사라 부르라 한 적이 없다.

<최소한의 선의> 집필 전 그는 정년퇴직을 했고, 어느 로펌에 가느냐는 물음에 집으로 간다고 답했다. 집으로 가서,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작가로 살겠다고. 어느 날, 그가 로펌으로 간다하더라도 역시 그의 삶일 뿐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글을 쓰는 삶은 그대로일 것 같아서다.

 

 

 

2. 최소한의 선의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가? 기대를 했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배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 이기도 한다.> p9

법... 이라니...? 법이라니? 법이라니? 이런 느낌이었다. 와! 이럴 수가.. 법에 대한 책이라니.

일단 법이라 하면 뜨악! 하게 되니까. 하지만 문유석 작가답게 잘 썼다. 프롤로그만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법에 대한 책을 읽어볼 동기부여가 제대로 됐다. 법치주의 국가에 살면서, 알고 싶은 적이 없었던 법에 대한 교양 수준의 읽을 만한 책이다.

평생을 판사로 일해온 문유석 작가의 책을 세번째로 읽었다. 첫 번째로 쾌락 독서를 읽었고, 다음은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문유석 작가가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을 썼고, 악마 판사의 대본을 집필했으나 보지 않았으니, 법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읽는다. 그런 면에서 기대가 됐다. 본업으로는 어떤 글을 썼을까?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개념이나 계도보다는 '사고방식'이다. 헌법의 기본 원리를 만든 사람들의 사고 방식,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사고방식, 판결문을 작성할 때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 다시 말하면 '법학적 사고방식'이자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이다.>

 

 

 

 

3. 법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냐!!
아니,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거 아니냐!!
빨갱이, 공산당이나 마찬가지다!!!
내로남불이다!!!!

댓글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글과 영상에는 저런 구호가 난무한다. 상대 진영의 주장을 비난할 때, 내 권한이 축소되고, 침해당한다고 느낄 때 분노와 자극은 쉽게 눈에 띈다. 알고리즘은 그런 걸 기가 막히게 알려주니까.

어느 때보다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서평이라는 형식으로 생각을 녹여낸다. 대체로 색깔이 없었는데, 40이 되니 그것이 정치나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색깔을 취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라는 반성을 하게 됐다. 매일을 베이지색으로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어른이 됐으니 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는 게 나의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다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평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p233

문유석 작가의 책을 읽고, 간단히 말하자면 자유, 평등, 그 위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로 설명하면 많은 법조항들이 설명이 된다. 법을 잘 몰라도 많은 법들이 그 아래에서 이해가 됐다. 정확한 해석이 아니라, 두리뭉실하더라도 법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가의 권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분명 개인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권한을 위임한 것이 국가가 아니던가. 국민의 의무가 있겠지만, 그보다 국가의 권한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형제도에 대해 질문한다. 너는 과연 국가가 국민을 죽일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은가?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한다면 사형까지 가능한 형벌 권한을 줄 것인가? 어디까지 그 권한을 위임할 것인가? 라는 질문.
플랫폼 시대, 개인사업자로 계약하는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궁금했던 질문들이다. 문유석 작가가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김영민 작가의 언급처럼 지금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알 권리'보다 '모를 자유'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P128> 인간 공해, 정보공해, 표현이 난무하는 시대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보였다. <켄 리우>의 <추모와 기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는 가끔 우리가 자유라는 개념을 오해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할 자유를 무엇을 피할 자유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니까요. 사람들은 총을 소유할 자유를 누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어린애들한테 사물함 속에 숨거나 방탄 책가방을 메고 다니라고 가르치는 것뿐이지요. 인터넷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적고, 말을 할 자유도 반드시 누려야 하니까, 유일한 해결책은 표적이 된 사람들한테 갑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뿐이고요."

공리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법의 정신으로, 다수의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소수를 보호하는 것보다 유익하다 판단되기에 결국 법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문유석 작가는 말한다. 법이란 그저 최소한의 선의라고.

<인간은 서로에게 상냥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것 아닐까>

인간의 존엄성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최소한의 선임을 알고 행하고, 생각하라. 조금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관대하게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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