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왕자를 보셨나요?
어린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왕자 중 한 명입니다. 어린 왕자의 작가는 생텍쥐페리고, 그 역시 짧은 목도리를 질끈 맨 파일럿 모습의 사진이 유명합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림은 또 얼마나 유명한가요. 행성을 커다랗게 움켜쥔듯한 바오밥 나무, 모자인 줄 알았더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 같은 것 들이요.
그럼에도 어린 날, 어린 왕자를 읽은 느낌은 재미없다 였어요.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린왕자가어린 왕자가 청소년들의 필독서에 꼭 오르내리는데, 정작 청소년 시절의 저는 어린 왕자가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그 책을 다 읽기는 했는지, 얼마나 봤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그 책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저는 크게 동의하지 못했어요. 제 기억 속에서는 왜 그렇게 어린 왕자가 감동적이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세계명작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어린왕자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어요. 그것 말고도 읽을 것은 많았거든요. 이제는 필독서 목록을 움켜쥐고, 그것들 중 골라서 읽을 이유가 없습니다.
동화 모임의 멤버와 책 속 문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었어요. 그녀가 법정 스님의 문장을 말해주었습니다.
"너를 통해 비로소 인간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중략) 너를 통해서 나 자신과 마주친 것이다.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 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법정스님에게 화엄경에 맞먹는 한 권의 책, 그리고 스님이 내 친구라 말하지 않았음에도, 스님의 작은 방에서, 스님의 우주 속에서, 스님의 작은 친구인 어린 왕자를 느낄 수 있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에 다시 어린왕자가 들어온 것이지요.
제목으로 붙인 <어린왕자를 보셨나요?>는 두 가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어 보셨나요? 그리고 별들 중 한 곳에 사는 어린 왕자를 느낄 수 있으신가요?
2. 줄거리
줄거리는 너무너무 유명하지요. 사막에 비행기가 고장나 조난당한 비행사가 그곳에서 노란 머리의 작은 소년을 만납니다. 자신은 소행성 B612에서 왔다고 소개하지요. 어린 왕자는 자기의 소행성에 있는 장미와 양, 매일 치워줘야 하는 화산, 커다란 바오밥 나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구까지의 여정에서 여러 별에서 만난 여러 사람에 대해 비행사에게 말합니다. 지구에 와서 만난 다른 장미들, 여우, 뱀도 이야기합니다.
조종사는 마치 생텍쥐페리처럼 느껴집니다. 별에서 온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설정이 동화나 소설 그 자체이지만, 그 사막에서라면 정말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이입니다. 신기루처럼, 환상처럼 이요.
지구로 오는 과정에 들린 여러별의 이상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른으로 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비춰봅니다.
자존심 센 장미와 다투고 소행성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고, 지구에 와서 저 많은 별들 중 나의 장미가 있는 별이 있기에 외롭지 않음을 알았다고 해요. 소년은 비행사에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중 한 별에 내가 있을 것이니 외롭지 않을 것이라 알려줍니다.
3. 감상
순수한 아이가 등장하는 많은 소설에서 아이의 말은 어른이 적었음에도 아이답고, 깨끗하게 느껴지지요. 꾸밈없이 솔직하게 다가옵니다. 생택쥐페리의 글에서도 그 부분에서 놀랐어요.
저는 어린왕자를 오디오북으로 들었습니다. 짧은 요약본 말고 완독 본을 찾아들었어요. 종종 소설은 오디오북으로 듣는다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왕자를 들은 뒤 지인들에게 어린 왕자를 소리로 들으니 너무 아름다웠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혹시 당신이 운전을 하거나, 걸으며 운동하며 어떤 책을 들을 생각이라면, 어린 왕자를 추천해봅니다.
어떤 문장들이 아이의 목소리로, 성우의 목소리로 귀를 울릴 때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문장을 눈으로 받아들일 때 즉시 필사하거나 옮겨 적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좋은 구절을 반복해서 재생해야 했어요. 그렇게 들으며 받아적은 몇 구절이 있습니다. 받아쓰기가 쉽지 않으니 웬만한 문장에선 다시 듣기를 결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적어놓은 몇 개의 문장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읽은 책을 어떻게 느끼고, 어떤 감상을 남겼는지에도 관심이 갑니다. 오디오북 어딘가에 적혀있던 댓글이 기억납니다. "가끔 어린왕자를 잠자기 전 듣곤 합니다." 그 사람은 어린 왕자를 반복 복용한다고 했어요. 그럼 늘 행복해진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자주 다시 읽어도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몰랐던 것을 이제는 알게됐어요. 어린날의 나는 그냥 어린 왕자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런 어른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모험을 모르는 안온한 아이라서 어린 왕자의 여정에 흥미를 못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40살이 된 지금은 어린 왕자가 가슴 설렜고, 어린 왕자가 다시 자신의 소행성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는 울컥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왕자야, 가지 마. 어린 왕자는 분명 놀라지 말라고, 이것이 자신이 소행성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했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어떤 아이는 여전히 어린날의 저와 같이, 어린 왕자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떤 어른은 이제 어린 왕자를 너무 사랑하게 됐습니다.
"누가 몇 백만개의 별 가운데 단 한송이 밖에 없는 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별들만 쳐다봐도 행복한 거야. 저기 어딘가 내가 사랑하는 꽃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거든. 그런데 어느 날 양이 그 꽃을 먹었다고 생각해봐. 그 사람에겐 모든 별이 갑자기 없어져 버린 거나 다름없어"
자주 잊게 됩니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게 무엇인지, 나를 살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온 우주를 빛나게 해주는 나의 어린왕자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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