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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is 뭔들

by 매일베이지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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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라카미 하루키 주절거리기

네이버 블로그 플랫폼을 이용하고, 인스타그램을 하는데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블로그에 20개 포스팅을 1차 목표로 잡고 글을 쓰면서, 이렇게 술술 써진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어요. 물론 책에 대해서만 오롯이 적는다면,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잡설이 더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글은 이미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에서 썼던 책인데 그때와 다른 이야기가 술술 써지는 게 신기해요.

잘 썼든, 못썼든, 그래도 분량을 채워 글 하나를 완성한다는 게 재미있어요.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인지 허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는 것만 빼면 모든 게 좋습니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이번에 두번째로 읽었습니다. 저는 읽은 책은 두 번 보지 않는데, 독서모임을 하며 재독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박웅현의 <여덟 단어>도 독서모임 연말 결산으로 다시 읽었고, 까뮈의 <시지프 신화>의 경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다 읽은 뒤 다시 한번 휘리릭 읽었어요. 다시 읽기의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여러 번 읽은 책을 떠올리니 <시지프 신화>가 문득 떠올라 버렸어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가. 아! 하나가 더 떠오르네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입니다. 꼭지별로 다양한 철학가에 대해 이야기한 에세이다 보니 다 읽은 뒤에 다시 한번 휘리릭 속독했었고요.

 

 


그러면 뭐하나요. 애석하게도 지금은 거의 다 까먹어버렸어요. 역시 애써 머리에 구겨넣은건 금세 튀어나가 버리나 봐요. 이야기가 옆길로 잠시 돌아갔네요.

하루키는 소설로 등단했고, 소설가가 본업이지만 저는 대체로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더 열광했어요. 하루키의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20대에 읽었을 때, 뭐.. 크게 와닿지 않았었고요. 1Q84를 샀는데, 한 장도 넘겨보지 않았고요, 잡문집을 읽고는 뭐야? 소설이야? 에세이야? 하는 꼰대력을 발휘하며, 난감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만 해도 사고가 경직돼 있었어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요즘은 소설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 같은걸 굳이 따지지도 않고, 그냥 소설가가 쓴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래. 소설이니까. 그렇다면 그런 거지. 갑자기 여기로 간다면 가는 거지. 갑자기 원숭이가 말을 하면 그런 거지. 하면서요.

하지만 늘 하루키의 에세이는 좋았어요. 그래서 이상하게 지금도 하루키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즐겨읽어요. 그래도 이제는 다시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2.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라는 사람이 좋지만, 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만든 책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라는 책입니다. 뇌가 젊은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사람의 청춘, 그가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 달리기, 매일 하루 20page는 무조건 쓰는 근력, 소설 속 인물들이 그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자신은 그저 그것을 받아 적을 뿐이라는 부러운 이야기를 머리를 주억이며 읽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 생각하지 않아도, 그 인물들이 눈앞에서 이야기 하고 행동한다니.. 혹시, 빙의 같은걸 말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하루키상(농담입니다.) 그냥 자기는 천재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천재야. 근데 지독하게 노력까지 하는 근성도 끝내주는 천재라는 생각요. 하루키도 하루에 20페이지씩 매일 쓴다는데, 너는 뭐하냐? 그렇게 안 쓰면 일단 어금니 꽉 깨물어라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직업으로 소설가를 꿈꾸지 않아도, 하루키의 이 소설은 자기계발서처럼 읽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 좋은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 적었고, 그것이 꼭 소설가가 아니라도, 사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든 추천하고 싶어요. 좋은 책이었다고요.

이 책을 읽고 하루키의 <무라카미 T>, T셔츠를 좋아해서 많이 모았는데 그것에 대한 에세이에요. 또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시리즈 중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읽으며 하루키는 온갖 잡다한 모든 것에 대해 글을 쓰는구나. 그것도 이렇게 재미있게!라고 놀랐어요. 기름에 신발을 튀기더라도 맛있다는 말이 있죠. 그것처럼 하루키는 똥 누는걸 글로 써도 그만의 매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에세이를 더 많이 읽어, 그의 에세이가 좋다는 말밖에 못합니다. 다음 차례는 그의 소설로 정할게요. 언제라고 약속은 못합니다.

3. 문장수집

처음 읽을 때 16개의 문장을 수집했어요. 그리고 다시 읽고 20개를 모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과 마음의 경계가 더 넓어져서, 하루키의 말이 더 많이 와닿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래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P270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기보다는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P57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 한지를 어떻게 판별해 나가면 되는가...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P105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아직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둡니다. 실제로 문장을 써보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순위를 보자면 그건 좀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P119

뭐, 지금도 좋네요. 일단 그저 내 선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보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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