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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by 매일베이지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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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F 사랑

SF소설에 대한 사랑을 자주 고백했습니다. 계속 그런 소설을 읽다 보면 제가 가진 범주와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아요.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인데, 머리도 마음도 말랑해지는 것 같아요. 이건 이런 거잖아. 저건 저런 거잖아. 에이~ 말도 안 돼가 조금씩 사라 진달 까요. 읽을 때마다 신선하고, 전율이 느껴져요.

흥미로운 책은 그냥 닥치는대로 읽었어요. SF 소설 역시 계속 쏟아져 나오니, 죄다 읽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여전히 SF에 대한 사랑은 유효합니다. 질리지 않네요. 늘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만나고, 읽으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 천선란


천선란 작가는 <천개의 파랑>을 먼저 읽고 찐한 감동을 느낀 기억이 있어요.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면 추석에 가족용으로 개봉하기 딱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무해한 스토리와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좋았어요. 주변에도 재미있게 읽을 소설로 추천해주었어요.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며 낭독소설의 재미에 빠졌어요. 천선란의 <어떤 물질의 사랑> 도 그렇게 낭독으로 들은 소설인데, 앞부분은 작가님이 직접 낭독을 했습니다. 목소리에 웃음이 묻어나는 것 같다는 건, 저만의 착각이었을까요. 어떤 구절을 낭독할 때 정말 정말 작가님의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느꼈어요. 댓글에 낭독자가 누구냐.. 집중을 방해한다. 너무 별로다라는 글이 있었어요. 저는 작가님이란 걸 알아서 인지, 그냥 작가님이니까 다 용서되는. 그렇더라고요.

 



웃긴 부분은 아니었어요. 만약 정말 작가님이 웃으셨다면, 그건 쑥스러워서 였을 것이라 생각해요.

전체 분량이 7시간이 넘는데, 운동하며, 운전하며 조금씩 들으니 어느덧 모두 들었어요.

 

3. 어떤 물질의 사랑

이 책 역시 단편 소설집입니다. 신간인가 했더니 2020년 출간작이예요. 여러 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저는 <레시>, <어떤 물질의 사랑>,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 <마지막 드라이브>가 특히 좋았어요. 제가 늘 그렇듯이 등장인물의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요.

<레시>는 바다가 죽어버린 미래, 바다를 살리기 위해 얼음바다로 뒤덮인 행성을 찾아간 과학자의 이야기예요. 그녀는 북극에서 손가락이 6개인 아들을 잃었어요. 그리고 외계 행성의 바다에서 레시라고 이름 지은 존재를 만납니다. 그 생명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손가락이 6개예요. 그녀는 레시에게서 죽은 아들을 떠올립니다. 지구에서는 레시를 지구로 이송해 연구하라고 명령하지만, 그녀와 과학자들은 레시가 그대로 그 바다에 머물기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렇게 되고요.

 



엄마라서 그냥 엄마 이야기가 좋은 걸까요. <레시>가 기억에 남아요.

<어떤 물질의 사랑>도 신선했어요. 배꼽이 없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 부분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들었어요. 아이가 "배꼽이 없는 사람 있지~ 알에서 태어나면 없잖아. 박혁거세."라고 말해서 얼마나 웃었던지. 맞아요. 우리 아들에게는 당연히 존재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물질의 사랑>에는 알에서 태어나 배꼽이 없는 아이가 등장해요. 그리고 비늘이 있는 남자도 나와요. 그는 성인이 되면 물고기처럼 자신의 행성을 떠나 사랑하는 상대를 찾고 번식을 합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사랑을 하지요.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배꼽이 없어요.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성별이 바뀝니다. 슬프게도 같은 성별로요.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번식할 수 있을 것이라 해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요. 어떤 것도 이상한 건 없다는 것이요.

<검은색 가면을 쓴 새> 바로 저어새가 등장하는 이야기예요. 가까운 미래, 많은 생물들이 멸종하는데, 저어새도 멸종합니다. 저어새는 우리 서해안에 서식하는 새라 더 익숙한 새예요. 그런데 그 저어새가 DMZ에 갑자기 생겨난 커다란 구멍을 통해 다시 나타납니다. 인류는 그것이 멸종한 생물들에 대한, 우리 인류의 희망이라 여기고 연구를 시작해요. 비무장지대에는 사람이 몰려들고 원래 그곳에서 식당을 하던 주인공의 부모도 사람이 몰려오면 장사가 더 잘될 것이라 기대하며 테이블을 늘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그 가족에게는 벌어지지 않아요. 자본의 이득은 그들을 비켜갑니다.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사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녀의 방에서는 건너편 방의 이상한 소음이 계속 들리고, 그녀 혼자만 그 고시원 방의 커다란 구멍을 볼 수 있습니다.

구멍을 탐사하러 간 사람은 소식이 끊기거나 백골이 되어 돌아옵니다. 어느 다국적 기업에서는 큰 상금과 무사귀환 시, 취업을 보장하며 탐험자를 모집합니다. 그녀는 지원하고, 대상자로 선정되어 탐색을 떠납니다.

참 씁쓸하고, 묵직했던 이야기예요.

<마지막 드라이브>역시, 좋았는데 좀 슬펐어요. 자동차를 테스트하는 더미의 이야기예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기술로 비약적으로 교통사고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발생하는 단 4%의 사망사고가 있습니다. 바로 운전자가 조수석으로 몸을 던져, 동승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고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밝혀지며, 인류는 이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합니다.

더미 로봇은 조수석의 로봇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반복적인 실험을 해요. 조수석의 로봇은 인공지능조차 탑재되지 않은 로봇이고요. 더미는 마지막 실험 전 날 데이트를 하게 해 달라 요청하고 , 두 로봇은 데이트를 합니다. 뭐 그런 이야기인데, 쓸쓸했어요.

그 외에 <사막으로>, <너를 위해서>, <그림자놀이>, <두하나> 총 8편의 단편소설집입니다. 짧던 길던,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게 참 재미있고 부러워요.

 




여러 SF를 읽을수록,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새롭지만 공감이 가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란 뜻이겠지요. 다음에 읽을 소설은 무엇이 될까요? :-) 요즘 소설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정을 기억하고 싶을 때는 사진을 봐요. 그럼 떠오르거든요. 특히 사진은 대부분 행복을 담은 순간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행복을 뽑을 가능성이 큰 복권인셈이죠. <그림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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